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둘레길
강원도 정선을 여행을 한다면 목적에 따라 여러 지역을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여행지이자 정선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아우라지를 빼 놓으면 서운하다.
정선 아우라지는 1994년 출간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편> 에도 소개된 장소다.
2025년을 기준으로 31년 전에 출간한 책에도 소개된 이곳은 정선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선의 많은 장소 중 이곳을 소개했을 것으로 생각 된다.
게다가 2023년 그 동안 출간한 10편의 국내편 중 한국의 명소만을 담아 재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아는 만큼 보인다>에도 소개 되었다.
아우라지 강 하면 무엇이 떠 오를까?
정선 레일 바이크 종점으로 알고 있거나 두 물줄기가 아우러진다고 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라는 정보 정도 일 것이다. 마치 양평 두물머리와 같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우라지에 대해 조금 더 알아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아우라지 강 특징
아우라지 강을 보면 강가에 모래와 자갈밭이 넓게 퍼져 있어 큰 강으로 보이지만 강 폭을 위성 지도로 보면 약 100미터 가량으로 큰 강이 아니다.
위 책에 기록된 강원도 정선 여량(餘糧, 오곡이 풍성해 남을 정도로 여유로운 곳)은 조그마한 산간 마을로 기록 했다.
세월이 흘러 구절리에서 정선을 잇는 정선선이 개설되면서 여량역 (오늘날의 아우라지역)을 중심으로 개편되고 1970년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마을길의 동선이 규격화된 상점과 반듯한 구획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현재 아우라지 역은 레일 바이크 종점으로 사용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은 아우라지 강변 유원지와 둘레길을 조성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오늘은 강원도 정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우라지 강을 돌아 보고 그곳에 조성된 둘레길을 걸어 보기 위해 아우라지 강변 유원지에 방문했다.
아우라지 강변 유원지

드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약한 비가 오고 있었으며 10월 초이므로 물놀이를 하기엔 늦은 계절이라 그런지 방문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아우라지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 야영장 데크에는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그리고 왼쪽을 보니 운동 경기를 하기엔 기울기가 있는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축구 골대나 잔디 위에 라인을 그려 넣지 않은 걸 보면 운동 경기를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 아빠들의 모습처럼 아이들과 원반 던지기를 하거나 캐치볼을 하는 정도로 활용할 수 있는 잔디밭으로 보인다.
10월의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아직 푸른 잔디가 인상적이다.

잔디 운동장 너머로 보이는 강 안내판에는 한강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강강
아우라지 강의 물줄기가 서울 한강까지 이어져있다.
서울 한강에 비하면 강 폭도 좁고 작은 물줄기 같아 보이는데 여러 지역을 지나며 마침내 서울 한강에 도달한다.
서울 집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시점에 한강뷰를 보며 러닝 하는 것이 꿈이라면 이곳 정선에 정착해 매일 같이 러닝 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한강은 한강이다.
아우라지 유래
강가에 가까워지자 아우라지 유래를 적어 놓은 안내 판이 보인다.
하나의 기둥에 4개의 안내판을 사방에 붙여 놓아 공간 효율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아우라지 유래
이곳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 애정 편 가사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으로 평창 발왕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송천과 정선 임계와 태백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하여 어우러진다에서 유래하여 아우라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님을 떠나보내고 애달프게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과 장마로 인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남녀의 애절한 사연이 정선아리랑 가사에 진하게 녹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매년 8월 초에는 아우라지 뗏목축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아우라지의 지명 설명과 정선 아리랑 <애정편>의 기원 그리고 뗏목 축제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정선 관광 안내

정선 마스코트 와와군이 오른쪽 모서리에서 손을 들고 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에서도 만났던 와와군인데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강원도에 얽힌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보다는 아쉬움과 가슴 아픈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그런 사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연환경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통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쉽지 않은 지역인데 옛날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사연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정선의 명소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 만항재를 비롯해 백두대간 생태 수목원, 북평면 벚꽃길, 정선읍 (조양산전망대), 짚와이어, 아라리촌, 민둥산 억새꽃, 화암그림바위 미술마을, 동강전망자연휴양림, 하이원리조트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우라지 나룻배

안내판 주변을 보니 언제부터 자랐을지 모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팔각정을 만들어 놓아 강변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 모습은 마치 동양화에 한 장면 같다.
그 시대에는 보도블럭이 없었을테니 보도블럭이 없다고 가정하고 보면 조선 시대로 회귀한 느낌일 것 같다.
강가로 가 보니 나룻배가 있었다.

나룻배에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2개나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올라가서 물에 빠진 사람이 생긴다면 구하기 위한 구명 튜브도 걸려있다.
옛날에는 나룻배가 있어야 건너 마을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룻배를 이용해 건너 마을로 건너갈 일이 없으니 마을 버스처럼 수시로 운행하는 것 같지 않다.
강가에 묶인 나룻배는 축제 때 사용하는 배가 아닐까 생각된다.

멀리서 바라 보니 물에 떠 있는게 용하다 생각할 정도의 모습니다.
올라가라고 해도 올라가기 무서운 모습이었다.
나룻배가 어떻게 움직일까 하고 바라 보니 강원도 속초 아바이 마을 갯배처럼 배에 와이어를 달아 건너편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동 거리는 속초 아바이 마을에 비해 아우라지가 훨씬 길다.
정선(旌善) 아우라지 노래비(碑)

아우라지
정공채 시 / 변훈 곡
-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
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있네
뗏목 타고 떠난 님 언제 오시나
물길 따라 긴 세월 흘러 흘러갔는데
<후렴> 아우라지 처녀가 애태우다가
아름다운 올동백꽃이 되었네
- 아우라지 정선에 애달픈 처녀
해가지고 달떠도 떠날 줄 모르네
뗏사공이 되신 님 가면 안 오나
바람 따라 흰 구름 등실 둥실 떴는데
아우라지 둘레길의 시작으로 보이는 이곳에 비석이 놓여있었다.
아우라지 둘레길
지금은 시들한 것 같지만 한 때 제주 올레길이 유행했었다.
그 이후 이곳 저곳에서 둘레길을 만들고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이곳을 출발지로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
파란색 코스를 따라 거리 약 1,200m, 60m/분 속도로 20분.
포토존-코스에서 사진 참고
주막촌에 그네와 벤치가 있으니 쉬어 가세요
유의점-돌다리 건널 때 조심, 총각, 처녀상에 장난 금지
코스 안내가 있는데 돌다리를 건널 때 유의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총각, 처녀상에 무슨 장난을 치는 걸까? 돌다리를 건널 때 유의 해야 하는 수준으로 경고를 한다.

이곳에서 출발해서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건너 다리와 강 중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 되돌아오는 코스.
멀어 보이지만 1.2km가량 되니 그렇게 먼 것 같지도 않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편에 주막이 있으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막걸리를 마시며 쉬어 갈 수 있다.
아우라지 총각상

일정상 아우라지 둘레길을 전부 돌아볼 수는 없어 상징적인 동상까지만 가 보기로 한다.
총각상과 처녀상인데 바로 앞에 총각상이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슬립온 슈즈 같은 고무신을 신은 채 롤업을 한 패션 감각이 돋보인다.
한 팔을 뻗은 포즈는 강가에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총각상을 지나며 강을 보라 보니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모습이 보인다.
만약 사전에 두 강이 합쳐진다는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민물이라서 그런지 두 물줄기가 합쳐진다고 해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 오는 방향이 다르니 두 물줄기라고 알겠지만 시각적인 효과는 없다.
강에서 시선을 달리 해 저 멀리 팔각정 왼쪽 아래 처녀 동상이 보인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코스 안내도

발걸음을 옮겨 조금 더 가니 올림픽 아리바우길 코스 안내도가 있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트레킹 코스이며 총 9개의 코스로 나누어 놓은 트레킹 코스.
느낌은 독일어 같은데 올림픽(평창) + 아리랑(정선) + 바우(강릉 바우길)’의 합성어라고 한다.
뜻이야 어쨌든 코스 이름에서 느껴지는 강력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풀 코스로 걸으면 진짜 올림픽에 출전해도 될 만큼의 체력이라 생각된다.
1코스부터 쉽지 않다.
정선 5일장에서 나전역까지 약 17.1km의 거리를 가는 것이다.
1코스의 거리를 보자마자 포기하고 싶어 진다.
보통 열심히 걸어가면 하루에 약 30km를 걸어가는데 평지라고 가정 해 보자.
1시간에 4km를 꾸준히 걸어가도 8~9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다.
훈련이 안된 일반인이라면 30km는커녕 20km만 가도 죽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다가 정선부터 목적지까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인데 코스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걷는 동안 펼쳐질 것 같지만 걸어본다면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 된다.
정선 아리랑 시장 -> 나전역 -> 구절리역 -> 배나드리 마을 -> 안반덕 -> 대관령 휴게소 -> 보광리 게스트 하우스 -> 명주군 왕릉 -> 송양초등학교
각 코스를 다 더해 보니 총 90km / 28~29시간 필요.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걷다 보면 굉장히 넓은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다시 목적지로 걷다

처녀상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강가를 바라본다.
강 밑 바닥이 보이는 것 같지만 얼마나 깊을지 가늠하긴 어렵다.
강 옆의 산은 수직에 가까울만한 기울기를 보여주어 완만함 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보여 준다.
저 산을 오르려면 등산이 아니라 등반을 해야 할 지경이다.
강을 보다 보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아는 만큼 보인다> 편에서 다룬 떼돈의 어원에 대해 생각이 난다.
아우라지에서 떼돈 벌었다는 말이 나왔다.
옛날에 군수 월급이 20원일 때 떼 한번 타고 영월 가서 팔면 30원 받았다고 한다.
벌목한 나무를 묶어서 강에 띄운 것을 떼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떼돈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큰돈 벌었다는 의미로 떼돈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정선은 강에 나무를 띄워 떼돈을 벌거나 탄광에서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했던 광부들의 애환이 있는 지역 같다.
아우라지 처녀상

다리의 끝에 다다르자 아우라지 처녀상이 보이고 처녀상 앞엔 돌다리가 보인다.
둘레길 코스를 그대로 밟았다면 돌아올 때는 저 돌다리를 건너 다시 왔던 길로 돌아왔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리 멀지 않고 코스가 험하지 않아 쉽게 갈 수 있다.

가까이 오자 아우라지 처녀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왼손은 치마를 붙잡고 있었다.

아우라지 처녀상의 앞모습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모습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처녀상이 총각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총각상도 처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면 함께 바라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상의 비극적인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아는 만큼 보인다>에 소개된 처녀상 사진을 지금과는 달랐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오른편으로 고개가 돌려져 있다.
책에 소개 되었을 당시 그 동상은 8년 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강원도 정선을 담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2편>이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1986년에 동상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동상은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니 새롭게 세운 것 같다.
처녀상의 비극적인 사연에 대해 이어 설명한다.
지금 아우라지 총각, 처녀상은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의 책에 의하면 40년 전쯤.
출간일 기준으로 1954년이 되겠다.
40년 전쯤이라고 하니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50~60년대에 있던 일일 것다.
전통 혼례식 날 신랑신부와 마을 하객을 태운 나룻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신랑만 남고 모두 익사해 버린 대형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신부는 가마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여 가마째 쓸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네는 지금도 3월이면 같은 날 제사가 많다고 한다.
그 후 해마다 익사 사고가 잇따르자 8년 전 (1986년 추측)에 처녀 동상을 세워 신부의 원혼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책에는 처녀상의 유래와 아우라지 강 뱃사공의 사연 및 정선 아리랑 유래 등을 기록해 두었다.

아우리지 처녀상
이곳은 송천(松川)과 골지천(骨只川)이 어우러지는 [아우라지]다.
여기서부터 남한강(南漢江) 1천 리 물길을 따라 처음 뗏목이 출발한 곳으로 정선 아리랑의 숱한 애환 (哀歡)과 정한(情恨)을 간직한 유서(由緖) 깊은 곳이다.
또한 뗏목을 타고 떠나는 님과 헤어진 곳이며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님을 만나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을 담아 불린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라는 정선 아리랑의 [애정 편]이 전해오는 곳이다. 이를 전하고자 처녀상을 세운다.
1999년 11월 1일
정선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아는 만큼 보인다>에 의하면 위 가사의 사연이 나와있으며 가사가 다르다.
해방 무렵 아우라지 뱃사공의 성은 지 씨였다.
장구를 하도 잘 쳐서 ‘지장구 아저씨’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가사는 “아우라지 뱃사공”이 아니라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 두 아들이 한국 전쟁 때 인민군에 부역했다고 해서 1970년대 정선군청에서 가요집을 내며 ‘뱃사공아’로 바꾸었다.
1980년대에 신경림 선생이 ‘민요 기행’으로 여기에 왔을 때는 강 씨 아저씨가 사공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고 정부에서 내주는 호구미로 연명하였는데 아내는 가난에 못 이겨 대처(大處)로 도망가 버렸다.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뱃사공아) 나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렇게 우리나라 3대 아리랑 중 하나인 정선 아리랑이 생긴 것이다.
남은 두 아리랑은 호남의 진도 아리랑, 영남의 밀양 아리랑이 있다.
유홍준 교수의 책과 비교해 보니 이곳에 처녀상의 안내된 설명은 차이가 있었다.

아우라지의 유래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 애정 편 가사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으로 평창 발왕산에서 합원하여 흐르는 송천과 정선 임계와 태백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하여 어우러진다에서 유래하여 아우라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적인 배경에서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부르며 여름 장마 시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천 (松川 : 일명 구절천), 골지천(骨只川 : 일명 임계천)

처녀상에서 바라본 총각상.
총각상이 잘 보이진 않아 노란색 네모로 표시해 두었다.
실제 보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은 아니다.
둘의 시력이 나빠서 서로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대충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거나 서로 다른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있어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통해 보면 처녀상은 결혼식 날 죽은 처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동상이다.
총각상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으니 이후에 사람들이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세운 동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우라지 여행을 마치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배경을 알면 다르게 보인다.
아우라지가 유명한 곳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연까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연을 알고 산과 강을 보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레일 바이크의 종점이고 산책하기 좋고 캠핑도 가능한 곳이지만 아우라지의 옛이야기를 알면 정선 아리랑의 뿌리를 알 수 있으며 아우라지에 얽힌 사연을 눈으로 보게 된다.
아우라지 강변 유원지
주소 : 강원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77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