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강박 관념에 빠지지 않는 2가지 방법

걱정과 강박

미래에 대한 걱정과 삶에 대한 강박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잘 살기 위해 미래를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은게 인생이다 보니 현재 삶과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개선 해 보고자 하는 행동이 강박으로 다가 온다.

잘 해 보려고, 잘 살아 보려고 하는 일들이 당사자의 능력을 벗어나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 있는가?

잘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 온다니 그것이 인생이다.
지금까지 지구를 밟고 살아 온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라 특별하진 않지만 받아들이긴 어렵다.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열심히 사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 사람들은 걱정과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망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없고 고생하려고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눈 앞의 문제와 다가 올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며 사는게 사람이다.

남보다 나은 삶.
그 이전에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걱정과 강박으로 살아 간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삶.
그 열심을 내다 보면 이게 맞는 삶인지 햇깔리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곧 침몰할 배에 탄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압박을 느끼고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는 삶을 살며 행복을 추구하는데 이게 맞는 삶인가?
의문이 들고 회의감이 들 때가 찾아 온다.

이런 고민 속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 했던 생각과 행동들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 돌아오니 끝이 없는 미로 속에 들어 온 기분이다.

지나온 삶이 모두 부정 당하는 것 같은 삶.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못사는 삶의 지름길로 간 것은 아닌지 후회와 슬픔이 밀려 온다.

동물의 삶에서 배운다.

이와 같은 고민의 해답을 찾던 중 동물을 삶을 생각 해 보면 어떨까 생각 한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걱정이 없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대비도 하지 않는다.
사람의 입장으로 동물을 보면 대책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관계 없이 동물은 태평 하게 살아 간다.
물론 사는게 쉽지 않은 것은 사람이고 동물이고 마찬가지이지만 동물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동물은 내일 굶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일 잡아 먹힐 수도 있고 갑자기 습격을 당할 수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자연 속에 사는데 가능한 일인가 생각 된다.

내일이 보장 받지 않은 삶을 사는 동물은 그저 현재에 충실한다.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하고, 졸리면 잔다.

사람이 동물처럼 살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삶이겠지만 동물의 모습을 보며 배울 것은 있다.

걱정 없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현실을 받아 들이는 수용성이다.

안달복달 하며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현실에 목메지 않는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동물과 같은 수용성이 필요하다.

이미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파도 처럼 밀려오는데 이걸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받아 들일지를 대비하는게 동물의 삶이다.

수용성이 있는 동물에게는 걱정도 강박도 없다.

수용성 있는 삶

받아들이는 것을 잘 해야 수용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없고, 지구가 자전 하는게 싫다고 해서 멈추게 할 수도 없다.
하다 못해 태어난 인종, 시기도 바꿀 수 없다.

이와 같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하기도 하지만 막을 수 없는 것도 받아 들여야 한다.

인생은 잘못한 결과로 재앙이 찾아 오기도 하지만 인과 관계도 없는데 재앙이 찾아 오기도 한다.
또는 잘 해보려고 한 일이 화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이 때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는지 원망하고 걱정하고 강박을 갖다 보면 재앙에 재앙이 더해 질 수 밖에 없다.

몸에 이상이 생긴다던지. 평소라면 문제 되지 않았을 일에서 문제가 생긴다던지.
인생이 인과 관계로 설명되는 게 아니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항상 걱정과 불안 그리고 강박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다.

내가 잘해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이 피곤하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내가 못했다고 한탄할 것이고 로또 복권 1등이 당첨되면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삶은 늘 긴장 가운데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내가 못하면 계속 안 좋은 일이 벌어지니 내가 잘해야만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쳐서도 안되고, 쉬어서도 안되고, 피곤 해서도 안된다.
인생을 내가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것에 싸구려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 온 사람들이 한둘이었겠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란 것만 깨달을 뿐이다.

윤택한 삶

한 번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이고 마지막에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것은 살면서 인생의 추억이다.
죽음 앞에 서면 후회와 슬픔이 함께 몰려 온다.

그런데 그 후회와 슬픔이 조금 더 걱정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가 이유일까?
조금 더 완벽하네 삶을 디자인하지 못한 강박일까?

모두 아니다.
너무 걱정만 하다가 제대로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한 후회.
잘 살아 보겠다고 완벽하게 행동하려고 했던 강박에 대한 슬픔이다.

어차피 죽을 때면 너도 나도 같으니 막 살자는 허무주의적인 시각이 아니다.

삶은 강물의 물고기의 모습과 비슷하다.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가 있고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가 있다.

항상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훌륭한 물고기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삶도 아니다.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강박에 집착하지 않고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이며 사는게 필요한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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