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2007년 개봉했던 영화 300. 그 당시 영화를 위해 지방 없이 근육으로 몸을 만든 남자 배우들이 극장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이것이 인간의 표준 체형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혹자는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당구 점수 300인 줄 알았지만 BC 480년 스파르타 군인 300명과 페르시아 100만 대군이 맞짱 떴었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으로 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스파르타와 그리스 연합군을 합한 총 7,000명이 전쟁에 나섰다고 하며 페르시아는 100만 대군이 아닌 20만 ~ 25만 명이 전쟁에 동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 입장에선 페르시아 군대가 100만 명이 아닌 25만 명이라고 해도 30배 정도 인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역사에서도 페르시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역사 속 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그리스 연합군을 후퇴시키고 영화처럼 자신을 포함한 300명만 협곡에 남아 싸우다가 전사했다.
영화에서는 300명과 100만 명이라는 숫자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전 세계에서 $ 456,082,343 (USD)를 벌어 들였다.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약 6,230억이다.
이 중 절반은 미국에서 벌어들인 금액이다.
그 이후 후속작들이 나왔지만 전작의 임팩트를 주진 못한 것 같다. 2024년 기준으로 17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영화 속 장면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300의 장면들을 생각해 보니 연애 초반의 공통점이 보였다.
This is Sparta
레오니다스 왕에게 항복을 권하러 온 페르시아 사신의 말을 거부하며 앞 발차기로 사신을 구덩이로 차 넣었다. 강력한 페르시아 군대 앞에 목숨을 부지하려면 이와 같은 행동은 곧 죽음을 각오한다는 의미임에도 곧 죽어도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 준 행동이다.
어찌 보면 꼴통 같은 모습이지만 강자만이 살아남는 고대 국가에서 목숨을 구걸한다고 살려 준 보장도 없고 살려 준다고 해도 결국 노예 생활을 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정말 운이 좋아서 페르시아의 통제를 받는 왕으로 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 생각했고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속 시원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모습은 연애 초반에도 볼 수 있다.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나오는지 과감한 결단과 행동을 보이며 평소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퇴근하면 최대한 빨리 쉬기 위해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면 연애를 할 때는 다시 새 힘이 솟아나서 데이트하러 출발한다. 확실히 맨 정신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 지금의 현실을 볼 때는 이뤄지기 힘든 꿈이라고 해도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꿔본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뀐다.
레오니다스 왕이 현실에서는 패배가 확실하지만 승리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보고 전쟁에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어려운 상황이어도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두려움이 없어진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면 초반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안에 두려움이 들어 올 틈이 없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이 가득하게 된다.
결말이 보이는 두려운 일이 눈앞에 와도 두려운 현실을 뚫고 나갈 용기로 가득 채워진 모습은 혼자 극복해야 할 일이라면 절대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솟아나는 힘
지칠 줄 모르고 방전되지 않는 체력은 초등학생 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연애 초반에서 이런 체력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회귀한 것처럼 별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체력이 좋아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상태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 같다. 사실 하드웨어적으로 보면 20~30대의 체력이 안 좋을 리 없다.
조선 시대처럼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에 영양의 불균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의료 혜택도 충분히 받고 외적의 침입으로 시달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라고 해서 쉬운 인생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무겁고 사는 게 힘들어서 몸과 마음이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 초반이 주는 힘이 모든 무게를 사라지게 만들어 주어서 몸이 가지고 있는 체력을 다시금 회복시켜 주는 각성 효과가 일어난다.
만화 주인공들은 악당들에게 몰매 맞고 짓밟혔을 때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과 지켜야 할 사람들을 떠 올리며 각성한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없으므로 비슷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원하는 사람과 연애할 때 가능한 것 같다.
영화 300에서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전쟁임에도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고 높은 전투력을 유지한 채 전쟁에 나간다.
연애 초반에 하늘에 별도 달도 따준다는 이야기를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이미 정신은 행복 회로로 풀가동 되고 있어서 물리적으로 힘든 일일지라도 이뤄주고 싶은 힘과 마음이 솟아나는 상태다.
나는 관대하다
영화에서는 빡빡이로 나왔는데 실제 역사 속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는 수염도 있고 머리카락도 있는 왕이 모습이라고 한다. 역사 속에서 페르시아 왕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악역을 맡다 보니 할리우드에서 괴상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현재 이란 사람들이 보면 기괴하게 보고 기분 나빠할 것 같다. 우리나라 왕을 역사 속 모습과 달리 빡빡이에 웃통 벗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속 명대사 가운데 하나인 나는 관대하다 (I’m kind). 이 단어가 연애 초반에 적용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넉넉히 채워진 곳간에서 남을 도와주는 여유가 생기듯 도파민과 옥시토신으로 꽉 채워진 머리로 인해 여유로움과 관대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주변 사람들이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얼굴 표정과 행동에서 행복감이 느껴지는 게 연애 초반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달리기를 하면 심장이 빨리 뛰듯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이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기회
첫사랑이 기억에 남는 것은 다시는 이런 사랑이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 이후 찾아오는 사랑의 감정은 점점 익숙 해 지기 때문이다. 노련하지 못했던 서툰 사랑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추억은 첫사랑만이 주는 특권이다.
연애 초반의 기회는 인생에서 자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오늘부터 사귀는 사이가 되었을 때 생기는 그 감정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100미터 달리기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위의 3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잠시 잠깐이니 최선을 다 해 즐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