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여행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기 원하는 나라 이탈리아.
그 이유는 과거 1,000년이 넘는 전성기를 누렸던 로마 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임과 동시에 빼어난 자연환경 때문일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국가는 다르지만 이탈리아 로마 또한 이 말이 일맥상통한다.
역사와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오래된 도시의 흔적, 돌멩이로 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배경을 알고, 역사를 안다면 같은 곳을 가고 보는 것이 같아도 그 느낌은 천지차이.
2025년 시점으로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13년 차 임성일 씨가 EBS 세계 테마기행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고 간다면 로마 여행이 한층 새로워질 것이다.
그는 지난 2024년에도 동일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로마를 소개했었다.
2025년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가 소개하는 로마의 또 다른 면은 어떨지 살펴 보기로 한다.
로마 즐기기 Tip.1 – 캄피돌리오 광장과 전망대에서 고대 로마의 풍광 감상하기
지난 2024년에 소개되었던 로마 즐기기 Tip.3 – 통일 기념관에서 커피 마시기에서 소개되었던 조국의 제단.
그 옆에 로마의 가장 성스러운 언덕인 캄피돌리오 언덕이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
이곳엔 로마의 중요한 신들이 모두 모여있다.
과거 유피테르(Jupiter), 유노(Juno), 미네르바(Minerva) 신전이 있던 캄피돌리오 광장.
그리고 로마 군대가 전쟁을 위해 출정 전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로마인들은 이 광장에서 로마의 국운을 걱정하기도 하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을 것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가 건국되던 기원전 8세기 7개의 언덕 중 하나이다.
미켈란젤로가 광장을 설계하며 로마 황제 동상을 옮겨왔다.
마르쿠스 아울레스 (Statua equestre di Marco Aurelio)

175년경 제작된 약 4.24미터의 청동 조각상 (복제품)이며 원본은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보존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로 5현제의 중 마지막 황제.
그리스 철학자처럼 수염을 길렀으며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하다.
중세 기독교 기간을 거치면서 황제의 청동 조각상은 녹여서 무기나 종으로 재활용했다.
그러나 기독교 황제 콘스탄티누스로 오인된 덕분에 보존된 조각상.
운이 좋은 건지 콘셉트를 잘 잡았는지 어떻게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헷갈려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는 없다.
주소 : Piazza del Campidoglio, 00186 Roma RM, 이탈리아
Plus Code : VFVJ+CX 로마 이탈리아 로마
홈페이지 – [ 링크 ]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의 마르쿠스 아울레스 동상을 등지고 오른쪽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로마에서 꼭 봐야 할 풍경이 펼쳐진다.
비아 몬테 타르페오 전망대 (Belvedere di Via Monte Tarpeo)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망대
로마에서는 유적을 복원할 때 발굴 당시 그대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경우가 있는데 포로 로마노가 대표적이다. 참고로 낮에 와도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지만 해 질 녘에 오는 게 더 멋있다.
로마는 일몰을 보는 장소가 여러 곳이 있는 것 같다.
가이드는 지난 2024년에서 소개했던 영상 중 일몰 장소 추천 시 로마 즐기기 Tip.5 – 환상적인 일몰 감상 부분에서 핀초 언덕을 추천했었다.
스페인 계단에서 핀초 언덕까지 가는 구간 그리고 두 장소에서 바라보는 로마의 일몰의 아름다움을 소개했었다.
그러나 이곳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비아 몬테 타르페오 전망대 또한 놓칠 수 없는 일몰 장소로 보인다. 로마에 이틀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이 두 곳을 모두 방문해서 일몰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낮에 보는 모습도 멋있고 일몰 풍경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풍경을 보고 감동을 받아쓴 책이 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문필가인 에드워드 기번이 쓴 책 <로마제국쇠망사(1776~1788)>의 구상 장소다.
전망대에서 포로 로마노를 바라보면 로마 제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으로 번성했지만 제국의 쇠락과 함께 폐허로 전락한 곳으로 무너진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이 걸어온 2,500년 흥망성쇠의 역사를 상상케 한다.
주소 : 00186 Rome, Metropolitan City of Rome Capital, 이탈리아
Plus Code : VFVM+29 로마 이탈리아 로마
좌표 : 41.892457268289135, 12.48360973360223
로마 즐기기 Tip.2 – 몬테 타르페오 길 따라 걷기
전망대가 끝이 아니다.
여행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새로운 길이 있다.
비아 디 몬테 타르페오 (몬테 타르페오 길 / Via di Monte Tarpeo)

2024년도 2월에 오픈했기 때문에 그전에 로마에 온 사람들은 못 본 곳이다.
너무 일찍 로마를 방문해서 알고도 못 온 길일 수도 있고 길이 개방되었지만 소식을 몰라서 못 본 곳일 수도 있겠다.
이 길을 가는 방법은 앞선 비아 몬테 타르페오 전망대 (Belvedere di Via Monte Tarpeo)에서 오른쪽을 보면 오르막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력적인 공간이 나온다.
좌표 : 41.89247982859955, 12.48351924032356
방금 전 전망대는 고대 로마를 담을 수 있다면 이 길은 현대와 고대가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카피돌리니 박물관을 만난다.
카피돌리니 박물관 (Musei Capitolini)

이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카피돌리니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간 박물관 안쪽엔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거대한 조각상(Satua colossale di Costantino)

로마의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에 있던 것을 복원한 것
고대 로마 조각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조각상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박해받던 기독교를 인정하고 로마의 수도를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새로운 로마 제국을 이끌었던 황제.

황제의 조각상은 전시된 것처럼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포로 로마노에 있는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쪽에서 머리, 팔, 발 등으로 나뉘어 발견되었다.
그걸 박물관에서 소유하고 있다가 상상 후 복원을 한 것이다.
조각상이 왜 이렇게 파괴되어 조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지진과 내구성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각상을 복원 했다고 해서 모두 진짜 조각상의 부분이 아니다.
발이나 머리 부분은 진짜 오리지널 돌이고 나머지는 석고로 전체적인 모습을 완성했다.
조각상을 본 사람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로마는 이토록 번성하고 예술, 문화, 건축 기술 등 모든 것이 발달했는데 왜 조각상의 비율이 이상할까?
그 이유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1,700년 전 로마는 황제를 초월적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인체를 사실적으로 여기면서도 눈과 발 등 일부를 크게 강조해 황제의 통찰력과 권력을 상징한 것이다.
무료 화장실

옛 로마인들만이 황제의 은총을 누리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지금도 황제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로 황제 오른편 뒤에 있는 무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공중 화장실은 1,500원~2,000원의 사용료가 있다.
하지만 이곳 화장실은 무료.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수리남>의 황정민 대사가 생각난다.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수리남> 전요환 목사 대사 중
유료 화장실이 사탄의 가래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료 화장실이 은총인 것은 동의해서 이 대사가 떠 오른 것 같다.
참고로 카피돌리니 박물관 정원 뒤편 정원에 전시된 콘스탄티누스의 거대한 조각상은 2025년 말까지만 전시한다.
2025년 내에 이탈리아 로마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면 조각상이 사라지기 전에 방문 하길 추천한다.
주소 : Via del Tempio di Giove, 3, 00186 Roma RM, 이탈리아
Plus Code : VFRJ+RJ 로마 이탈리아 로마
로마 즐기기 Tip.3 – 제국의 권력과 기술이 응축된 무대 콜로세움 감상하기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도 소개되었고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콜로세움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건축물인 것은 알지만 역사와 기술을 알면 더욱 놀랍다.

콜로세움 (Colosseum)
서기 80년에 완공된 고대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로마 제국의 권력과 건축 기술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종교의 자유를 열어 주었다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선물했다.
로마의 축소판 콜로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콜로세움은 AD 72년부터 80년까지 8년 동안 지어졌는데 그 안에 로마의 문화, 기술, 정치 모든 것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당시 콜로세움을 본 고대 로마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집트 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하지 말라
아시리아 인들아 바벨론을 자랑하지 말라황제의 새로운 원형 경기장 앞에서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마르티알리스 (Martialis)
크기와 규모로 보면 피라미드가 더 크지만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던 기술들의 집약체가 콜로세움이므로 이므로 자부심이 컸던 것 같다.
로마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는 즉위하자마자 콜로세움을 짓기를 명령한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주된 이유는 혼란스러운 로마에서 군중들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콜로세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EBS 다큐 프라임에서도 알 수 있다.
위 영상을 참고하여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빠르다.
콜로세움 기둥 양식

콜로세움은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이자 경기장이 아니었다.
예술적 감각을 살린 건축물인데 콜로세움의 아치와 아치 사이의 기둥에 장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문화는 보통 그리스 양식 3가지가 일반적인 양식으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을 가까이서 보면 그 양식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은 납작한 도리아 장식
2층은 양머리처럼 말려있는 이오니아 양식
3층은 화려한 코린트 양식
1층은 무겁고 남성적이고 2층은 우아하고 3층은 화려하고 가볍게 지은 것이 콜로세움.
벨라리움(Velarium)

지금은 나무가 사라졌지만 당시엔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벨라리움(Velarium)에 나무 작대기를 꼽아두었다.
나무가 일종의 돛대 역할을 해서 개폐식 천막 지붕을 만든 것이다.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햇빛 가리개 (벨라리움)
관중들에게 햇빛 가리개인 벨라리움을 설치해 주고 관람석은 계급에 따라 철저히 구분했다.
1층은 황제와 귀족 4층은 노예와 여성들의 좌석으로 구별했다.
계급이 낮을수록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봐야 했다.
한 공간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분이 아니란 것을 각인시키는 것 같다.
콜로세움은 한 번에 5만 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콜로세움 내부

콜로세움 내부가 복잡하니 이곳저곳 헤매지 말고 들어온 길 따라 끝까지 가면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 따라 올라가서 콜로세움의 맨 위층을 관람하고 아래층 순으로 내려오며 관람을 추천한다.
올라가는 길에도 계급의 차이가 있었다.
힘들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도록 만들어졌는데 당시 하층민이라면 4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 높이는 지금 아파트로 따지면 15층 높이.
정리해 보면 하층민들은 아파트 1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 복원도

지금이야 낡고 부서져 과거의 영광을 추측하는 콜로세움이지만 당시의 복원도를 보면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불평불만이 없었을 것 같다. 하층민으로 분류 되어도 빼어난 건축물에서 흥분되는 경기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으니 귀족이 되어서 1층에서 편하고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 몰라도 시대적 상황을 고려 해 보면 이렇게 구경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가 아니었을까?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옛 콜로세움의 복원도가 나오는데 박물관 같다.
1층은 아치들은 모두 출입문으로 5만 명의 사람들의 입장과 퇴장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2층 ~ 3층은 각기 다른 조각상이 있었다.
콜로세움 위치와 황제의 마음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호화로운 황금 궁전 일부를 허문 자리에 지었다.
그리고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터에 있던 조각상들을 뜯어서 2층과 3층에 세워놨다.

마지막으로 궁전 앞의 네로 황제 동상은 태양신 콜로수스로로 개조해 콜로세움 입구에 세워놨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네로는 이걸 사유했다면 나는 이것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당시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의 의도였다.
겉으로는 절대 권력의 황제 같지만 로마의 제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눈물겨운 구애가 보이는 모습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폭군 네로 황제가 축출된 뒤 우여 곡절 끝에 황제가 된 인물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위태로운 왕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콜로세움이다.

그 결과 네로의 소유물이었던 아름다운 여러 조각상과 네로 동상을 없애고 태양신 콜로수스로 바꿈으로써 네로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네로는 개인의 사익을 중요시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콜로세움의 아치
콜로세움은 단 8년 만에 완성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물이고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해도 빨리 완공을 해야 황제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적인 요소와 빠른 완성이 핵심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치다.
콜로세움은 아치의 교향곡이다.
콜로세움의 아치 기술은 현대 건설 기준으로 봐도 경이로운 수준이다.
양옆의 돌을 세우고 반원의 나무틀 위에 돌을 쌓고 가운데 쐐기돌을 꼽아 완성 시킨다.
이때 위에서 쐐기돌을 누를수록 견고하게 힘이 양옆으로 분산되면서 튼튼한 건물을 만들게 되었다.

1층부터 3층까지 각 층마다 80개의 아치가 연결되었다.
240개의 아치는 규격에 맞춰 제작해서 마치 블록 조각처럼 빠르게 조립해서 완성 가능했다.
그렇게 완성된 콜로세움의 한복판에서 검투사와 맹수들의 싸움이 있었다.
콜로세움의 연출

현재 콜로세움의 나무 바닥은 삭아서 없어졌다.
초반에는 돌판을 깔았는데 무거워서 빠른 연출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돌판을 교체하고 나무판으로 깔았는데 나무판의 단점은 피를 흘리면 나무에 스며서 썩고 냄새났다.

그래서 로마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판위에 모래를 깔았다.
피를 흘려도 모래 위에 피가 송골송골 맺히니 모래만 걷어내면 새로운 연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대 라틴어로 모래 = 아레나 (Arena)
오늘날의 원형 경기장을 아레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검투 경기 외에 해전 연출도 했다.
이 경기를 위해 콜로세움의 마른 바닥은 바다로 변했다.
콜로세움 내에 6만 5천 리터의 물을 채우고 그 위에 배를 띄워 상대가 전멸할 때까지 싸우게 했다.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오징어 게임>의 현실 버전이라고 생각된다.
게임이라고 칭하는 테두리 안에서 패배는 곧 죽음을 걸고 싸웠으니 말이다.
콜로세움 내부에는 물을 넣고 채우는 공간이 있었는데 물을 넣고 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로우니 없애고 특별한 장치를 설치했다.

동물과 검투사 등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복잡한 도르래 장치를 설치했다.
사진에 표시된 곳이 당시 도르래 장치가 남아있는 곳이다.
당시 로마인들은 지금의 엘리베이터와 같은 장치를 설치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과학 기술로 연출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콜로세움에 모두 집약 시킨 것이 느껴진다.
콜로세움 지하에는 최대 70여 개의 수동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승강기는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황제가 경기가 지겨워질 때쯤 손바닥을 뒤집으면 수많은 야자수가 나오는 연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수동으로 움직이니 그 안의 노예들은 승강기가 움직일 수 있도록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하 2층에는 검투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지하 1층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땅에서 솟아 나온 검투사가 사나운 맹수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로마인들은 환호했다.
당시 승률 높은 검투사는 지금의 아이돌 인기를 능가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의 목적 중 하나는 황제의 시민들의 인기를 위해서였으니 황제라고 해도 검투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잘 보여 준 것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시민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주인공 검투사를 죽일 수 없는 상황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원하면 살리고 원치 않으면 죽이며 시민들과 황제가 소통했던 장소가 콜로세움이었다.

콜로세움은 권력, 지식, 예술, 기술, 인간의 잔혹한 욕망이 한데 응축된 로마 제국의 축소판이다.
주소 : Piazza del Colosseo, 1, 00184 Roma RM, 이탈리아
Plus Code : VFRR+3V 로마 이탈리아 로마
홈페이지 – [ 링크 ]
로마 즐기기 Tip.4 – 500여 년 된 식당에서 전통 로마 음식 맛보기
빠니보틀의 이탈리아 미식 여행 1~3편 중 1편은 로마에서 맛집을 찾아다녔다.
소개 된 맛집들은 동행한 나폴리 맛피아가 추천하는 맛집도 있고 미슐랭에 선정된 맛집도 있었다.
해당 포스팅에 기록한 맛집들도 좋지만 그 영상에서 소개되지 않은 맛집을 추천한다.
가이드가 알려 준 500여 년 된 전통 식당

식당 이름 : La Campana
‘종’ 이란 뜻의 이 식당은 1518년에 문을 열어 500여 년간 영업 중인 식당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당대 유명인들도 다녀간 식당이다.

식당 입구에는 카라바조 (화가), 괴테 (문학가), 소르디 (영화배우)가 다녀갔다는 신문 기사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만이 가질 수 있는 기록들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다.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붉은 새우’란 뜻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미식 평가 기관
이탈리아는 미슐랭보다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가 더 권위 있다고 한다.
이 표시가 맛집을 인증하는 표시가 더 공신력 있다고 하며 이곳은 꾸준히 선정되는 식당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미슐랭보다는 감베로 로쏘에 선정된 식당을 찾는 것도 맛집을 찾는 방법으로 보인다.
필수로 먹어야 할 메뉴 2가지
식당에 가서 뭐가 맛있냐고 하면 다 맛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답.
그래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를 시청자들을 위해 가이드는 이곳의 대표 메뉴 2가지를 선정해 알려 주었다.
- 아티초크 튀김 (카르초피 알라 주디아 / Carciofi alla Giudia)
- 호박꽃 튀김 (피오리 디 추카 프리띠 / Fiori di zucca fritti)
이 두 가지 음식이 이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요리로 추천했다.

노란색이 호박꽃 튀김, 갈색이 아티초크 튀김.
가이드와 스태프 포함 총 3명이 함께 촬영을 하니 한 사람당 1개의 메뉴를 먹을 수 있도록 각 3개씩 주문했다.
아티초크 튀김 (Carciofi alla Giudia)
바삭하게 튀긴 유대인식 아티초크 요리.
로마 유대인 지구인 게토 지역에서 유래했다.
인구 밀도가 높고 별다른 주방이 없어 항상 기름을 이용해 음식을 튀겨 먹었다고 한다.
아주 특별한 맛이라기 보다 그냥 맛있는 요리.
호박꽃 튀김 (Fiori di zucca fritti)
호박꽃 튀김 안엔 모차렐라와 안초비를 넣었다.
쫄깃한 모차렐라와 짭조름한 안초비의 조화가 일품.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요리이지만 맛있는 요리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긴다.
소꼬리찜 (Coda alla Vaccinara)

소꼬리에 토마토와 셀러리를 넣고 푹 익혀 부드럽게 조리한 로마 전통 요리.
가난한 사람들이 인기 없는 부위를 맛있게 먹기 위해 푹 삶아서 안에 마늘, 향신료, 토마토 넣고 끓여 낸 음식이다.
피자, 파스타에 질린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로마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소꼬리찜.
우리나라는 끓여서 꼬리곰탕을 만들어 먹었는데 푹 삶는 것 까지는 같지만 각종 재료를 넣어 만들어 먹는 모습이 특별하다.
주소 : Vicolo della Campana, 18, 00186 Roma RM, 이탈리아
Plus Code : WF3F+3R 로마 이탈리아 로마
홈페이지 – [ 링크 ]
로마 즐기기 Tip.5 –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의 샹들리에 감상하기
식당과 멀지 않은 곳에 로마인들이 사랑하는 성당이 있다.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Basilica dei Santi Giovanni e Paolo)
로마의 첼리오 언덕에 있는 고대 성당.
398년, 로마인 순교자 요한과 바오로를 기리기 위해 건립.
여행자들보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명소이며 로마인들이 결혼식 장소 1순위로 꼽는 명소.
수많은 성당이 있지만 로마인들이 결혼식을 하기 원하는 장소 1위가 된 것은 성당 내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코모 트리가의 작품

자코모 트리가 (1674-1746 / Giacomo Triga)
로마에서 활동한 후기 바로크 시대의 종교 화가

두 형제 요한과 바오로 형제의 순교를 그린 작품 (1726년 작품).
성당 내부로 들어오면 자코모 트리가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18세기 작품이며 두 형제 요한과 바오로 형제의 순교를 그린 작품 (1726년 작품).
로마 제국 초기에는 황제를 신격화하고 다신교를 믿었다.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박해받고 순교 당했는데 이 성당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형제 순교자의 집 터 위에 세워졌다.
5유로로 감상하는 샹들리에

성당이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라면 이전에 소개했던 빈콜리 성 베드로 성당도 만만치 않은 분위기가 있고 상징성이 있다.
크고 특별한 성당이 많지만 이 성당이 많은 사랑을 받는 데엔 5유로로 작동하는 샹들리에 덕분이란 생각이 있다.
가이드는 성당 내부에 있는 동전함에 5유로를 넣으면 장관이 펼쳐지는 것을 이야기하며 5유로를 넣는다.

성당의 샹들리에에 5유로 (약 8천 원)을 넣자 순차적으로 점등 되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다.
36개의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264개의 전구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함께 온 관광객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이 순간을 촬영한다.
그만큼 눈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모습이다.
주소 : Piazza Dei SS. Giovanni e Paolo, 00184 Roma RM, 이탈리아
Plus Code : VFPR+JW 로마 이탈리아 로마
홈페이지 – [ 링크 ]
2025 로마
약 50여 분 만에 로마의 모든 것을 담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임성일 가이드는 로마에 왔을 때 무엇을 보고 본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준다.
역사와 의미를 알고 보니 오래된 낡은 건물, 옛 길이 모두 새롭게 보인다.
아마 방송을 안 보고 로마를 갔다면 오래된 도시에 있는 맛집이나 누구나 가는 관광지를 둘러보는 관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특별한 장소도 알고 그 의미까지 함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