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라오스 여행 비엔티안 10화 호파케우 사원과 차오 아누봉 공원의 동상

호파케우 사원을 향해 가다

라오스 비엔티안 대통령 궁 앞

대통령 궁을 지나 호파케우 (호파깨우, 호파케우, 호 프라 케우, 호 파 케우) 사원을 향해 간다.
이 중 어떤 발음이 표준 발음인지 모르겠다.

대중적으로 알려 진 이름은 호파케우 같긴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한 발음인지 모르겠다.

이 사원은 1565년 지어진 사원으로 에메랄드 부처 상이 있는 사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없다.

위키 피디아에서 찾아보니 1779년 태국의 샴 장군 차오 프라야 차크리 (현 태국 차크리 왕조를 창건한 사람)가 라오스 비엔티안을 침략했을 당시에 에메랄드 불상을 약탈해 갔다고 한다.

침략 당시에 사원은 파괴되었으나 비엔티안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아누봉 왕에 의해 1816년 재건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826년 시암 (현 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시암에게 진압당하고 사원은 다시 파괴되었다고 한다.

태국이 약탈해간 에메랄드 불상은 현재 태국의 국보 1호라고 한다.
다른 국가의 유물이 자국의 국보 1호라고 하니 태국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메랄드 불상의 크기는 66cm 정도라고 한다. 크기만 보면 큰 불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체가 에메랄드가 보석 중 하나 이므로 상당한 값이 나갈 것 같다.

물론 가격만으로 국보 1호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사원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36년 ~ 1942년 사이에 재건된 모습이라고 한다.
1987년에 예배당에서 박물관으로 전환된 곳이며 사원 안에 들어가 보면 큰 불상 앞에서 소원을 빌 수 있게 운영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나 라오스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에 의해 침략 당하고 유물도 빼앗기고 사원도 두 번 재건했으니 말이다.

탓 루앙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 궁 근처에 있는 호파케우 사원에 도착을 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주변

라오스의 사원들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큰 규모에 놀라게 된다.
산 속의 사원 보다는 평지에 큰 사원이 특징처럼 보인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매표소

사원이자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사원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차량을 가지고 올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걸어오든지 라오스의 우버 택시와 같은 로카 (Loca) 앱을 통해 차량을 불러 이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차량을 가지고 오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올 일이 있다면 사원 앞에 주차장이 있으니 주차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주차장

오후 3시 30분에 가까운 시간. 아직도 햇빛을 직접 받으면 아플 정도로 따갑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 주변에 볼 게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관광객을 제외하면 현지인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입구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을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이 시간에 이곳을 올 확률이 높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이 사원 입구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안내판

2023년 5월이지만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가 붙어 있었다.

Ho Phrakeo Monuental Museum
친절하게 안내판까지 함께 붙어 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내부 벤치

내리쬐는 햇빛과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이곳에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벤치가 있다.
잘 가꿔진 정원은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표 사는 곳

이곳 역시 외국인과 내국인의 입장료가 달랐다.

내국인 (5,000킵) / 400원
외국인 (30,000킵) / 2,000원

6배 차이를 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큰 금액이 아니라 부담은 안된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원래 입장료는 2,000원 인데 내국인은 우리나라의 지역 주민 할인과 같은 개념으로 할인 해 준다 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탓 루앙, 호파케우 등 어느 사원을 가도 내국인/외국인의 금액 차이가 있었다.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라오스에 있는 사원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라오스 돈을 준비해야 한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에 늘어선 의자

당시엔 화장실을 갈 마음이 없었지만 공중 화장실이 어떤지 들어가 볼 걸 이란 생각이 들자 약간의 후회가 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의 관리자

정복을 입은 라오스 관리자인지, 군인인지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전경

입구에서 사원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다만 햇볕이 따가워서 빨리 사원 안에 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의 안내문

라오스와 프랑스가 식민지 관계에 있어서 좋은 사이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자세히 안 보여서 읽기 어려웠지만 추측하기론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나 보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내의 열대 나무

이름은 모르겠지만 열대 지방에서만 살 것 같은 나무다.

호파케우 사원 안으로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유물

호파케우 사원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이때, 계단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문제는 햇빛에 달궈진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비가 와도 문제지만 이렇게 햇빛이 뜨거울 때도 문제다.
차력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뜨거운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다니 웬만한 불심으로는 이겨내기 힘들다.
양말을 신고 올라가도 뜨거운데 만약 맨발로 왔다면 가능하면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게 살 길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주의사항

사원이자 박물관 내부에서 금지되는 사항이다.
사진 촬영이 불가하고 무기 소지도 안되며 반려 동물 출입도 불가하다고 쓰여있다.
상주하는 직원이 안에 있으므로 허튼짓을 하다간 벌금 내고 어려움을 겪게 되니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내부에 보이는 유물

내부를 설명하면 유리관에 있는 각 종 유물과 함께 큰 불상이 정면에 있다.
그리고 근처엔 투명한 기부 박스가 있었다.

이곳의 방문객들이 소원을 빌고 돈을 넣어 놓은 것 같다. 우리나라 돈도 볼 수 있었다.
조명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어두웠으며 사원 특유의 향이 있는 곳이다.

사원의 정원을 돌아보다

작정하고 이곳을 방문했다면 금방 나가기 아쉬울 정도로 넓고 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겉모습과 내부만 보게 되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정원

하늘을 향해 무언갈 들어 올린 동상.
에메랄드 불상을 안치할 때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봤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내의 라오스 역사

History of Ho Pha Keo

Situated on Setthathirath Road, Ho Pha Keo was constructed in 1565 by the great king Sayesetthathirath of the Lane Xang Kingdom to house the Emerald Budda after he had moved the capital from Xiengdong Xiengthong (present day Luang Prabang) to Vientiane in 1560

The Emerald Buddha stayed at Ho Pha Keo for 219 years (1560-1779). It was taken to Siam (present-day Thailand) in 1779 by King Taksin the Great during the reign of King Siribounyasan of Lane Xang.
In 1987, Ho Pha Keo was converted to a museum and now houses a collection of artifacts and religious art

호파케우 사원의 역사

호파는 세타티라트(Setthathirath) 도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1565년 란쌍 왕국의 대왕 사예세타티라트가 1560년 생동시롱(현재의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긴 후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것입니다

에메랄드 부처는 219년(1560-1779) 동안 호파케우에 머물렀습니다.

그것은 1779년 란쌍의 시리부냐산 왕 때 탁신 대왕에 의해 시암(오늘날의 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1987년 호파케우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현재는 유물과 종교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파파고에서는 란쌍왕국을 레인상으로 번역을 하고 호파케우는 호파거로 번역을 했다.
그 부분만 수정한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역사와 동일함을 알 수 있었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에 전시된 돌 항아리

무슨 구조물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라오스에서도 아직도 정확한 용도를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구조물은 돌 항아리이며 라오스 폰사반 지역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폰사반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항아리 평원 인근으로 유명한 곳이다.
돌 항아리는 곡식이나 술을 보관한 창고로 사용하거나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추측만 있다.

이 지역은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으로 전쟁 물자가 라오스 폰사반 지역을 통해 들어가서 미군이 폭격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돌 항아리 지역엔 포탄으로 인한 피해와 불발탄이 남아 있어서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나라 DMZ에 매설된 지뢰가 있는 것과 같은 위험 같아 보인다.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파다가 불발탄의 뇌관을 건드려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정원 모습

필터를 넣지 않고도 멋진 풍경이다.
오렌지 컬러가 메인으로 보여서 그런지 더욱 화사 해 보인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 예술품

죽은 나무에 조각을 한 것 같다.
줄기가 없는 나무도 있고, 줄기가 남아있는 나무도 보인다.

그림과 함께 판매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판매자가 자리에 보이진 않았다.

라오스 비엔티안 호파케우 사원을 바라본 모습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돌아본 호파케우 사원

라오스의 마지막 왕조의 역사와 이웃 나라의 침략으로 빼앗긴 불상 이야기는 화려한 모습 속에 아픔을 감춘 듯하다.

차오 아누봉 공원

이곳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차오 아누봉 공원으로 향한다.

차가 없다면 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길가에 덩그러니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차오 아누봉 동상

메콩강 강변에 위치한 공원인데 공원이라고 하지만 길가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다.

비엔티안 마지막 왕조이자 시암( 현 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고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사형당한 왕이다. 호파케우 사원의 역사에서 나왔던 왕이다.

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지만 라오스 인들에게는 태국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동상의 모습을 보면 오른손을 태국 쪽으로 뻗고 있다.
이 모습은 다시는 라오스를 넘보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라오스 비엔티안 차오 아누봉 공원 안내문

이곳에서 한글을 볼 줄은 기대도 안 했는데 한글이 있었다.

차오 아누봉 공원 경관 조명 기증

라오스와 한국 간의 우호 증대 및 상호 협력관계 앙양을 위한 노력의 증표로,
한국의 (주) 해든 (나래전기)에서 본 공원의 조명설계 및 조명 기구를 기증하였음

2011년 11월

한국과 우호 관계 증표로 조명 시설을 기증했다고 하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밤에 왔다면 조명으로 인해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바라 본 태국

차오 아누봉이 가리키는 태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국경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국경이라고 하면 삼엄한 모습에 긴장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비엔티안에서 바라 본 국경은 그렇지 않았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본 태국 국경 모습

오늘 밤이면 이곳을 떠난다. 마치 당일치기 국내 여행 같다.

그동안의 일정들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떠나는 날이 되니
지금까지 연속된 일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 라오스를 와서 둘러보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국내 여행 같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가는 교통편이 비행기이며
약 5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 해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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