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랜드마크 탓 루앙
탓 루앙을 처음 방문한 때는 어제저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서 탓 루앙을 들어가 볼 수는 없었고 그 옆의 왓 탓 루앙 타이 사원을 들어가고 그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입장료도 없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사원임에도 거대한 와불이 있어서 라오스에 왔다는 실감이 나는 사원이었다.
하지만 라오스 사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라오스 화폐에도 그려진 라오스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탓 루앙을 안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오늘 밤 비행기로 돌아가기 전 탓 루앙을 재방문 해 본다.
안내문을 보니 코로나 시기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이곳을 들어올 수 없었다, 어느 곳이나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는 필수였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외국인과 내국인의 입장료 차이가 있었다. 정확한 금액 차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사진을 찍지 않아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금액에 차이를 두는 것이 이상 했다. 궁금한 마음에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보니 가격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외국인 : 10,000킵 (약 720원)
내국인 : 3,000킵 (약 210원)
3.3배가량의 금액 차이가 있었다. 금액이 크지 않아서 3.3배를 더 내도 부담이 되진 않았지만 단위가 커진다면 3.3배나 더 내야 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차이다.
탓 루앙을 돌아보다
비엔티안의 5월은 우리나라의 맑은 가을 하늘과 같았다. 하지만 여름을 향해 가는 계절이라 그런지 햇빛은 한 여름처럼 따가웠다. 그늘에 있다고 해도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시원한 느낌보다는 덥다는 느낌이 든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라오스 역사도 잘 모르기 때문에 탓 루앙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관광객의 입장으로 보면 지폐에 그려질 만큼의 사원이라면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라오스 인들에겐 건국의 뿌리와도 같은 장소였다. 라오스의 가장 위대한 왕이 비엔티안으로 천도하면서 지은 사원이기 때문이다.
사원에 들어서고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다행히 뙤약볕에 사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 통로를 걸어가며 각종 유물과 설명을 볼 수 있었다.
이 복도 안에는 돈을 기부할 수 있는 기부 함도 보인다.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시주를 하면 된다.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사원을 한 바퀴 돌며 유물도 보고 사원도 보며 천천히 돌아 본다.
누군가 메리 골드를 불상 앞에 두었다. 라오스에 오면 가장 많이 보는 꽃이다. 왜 이곳에 두었을까? 불상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 7세라고 하는 왕인데 지금의 캄보디아 왕의 불상이다.
과거 라오스는 크메르 왕국 (캄보디아)의 영토였는데 이곳까지 지배를 했었던 왕이고 왕은 곧 신이라는 생각에 불상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 왕이 아닌 캄보디아 왕인데 왜 불상을 전시해 두었을까?
The King Jayavarman Vii was a statue of Meditation Posture
which made of sand stone sculpture that was at the end of khmer-bayond style,
saypong period and in xii th century who was one the earlies khmer king devotee of buddhism and built 102 hospitals and gealth centers throughout souvanhnaphoum at that time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는 크메르-바욘드 양식, 세이퐁 시대 말기, 12세기 초기 크메르 왕의 독실자 중 한 명으로 당시 수반나품 전역에 102개의 병원과 보건소를 건립한 사석 조각으로 만들어진 명상 자세의 동상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업적을 보니 단순히 영토를 넓힌 왕이 아닌 백성을 생각한 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라오스 전통 왕이 아님에도 이렇게 불상을 사원 안에 두고 전시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수 천년 전 유물을 이렇게 외부에 전시를 해도 누군가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훼손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아무런 가림막 없이 눈앞에서 옛 시대의 유물을 보는 것이 신기했다.
탓 루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관광 시간이 있다면 유물의 설명서를 찬찬히 읽어보며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 설명을 읽어 본다. 6~9 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모래로 만들어진 돌이다.
아마 탓 루앙 사원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걸 만들었던 라오스 사람들은 후대에 전해질 것을 알고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시간이 흘러 이들에게 외국인인 내가 이곳에서 보고 있으니 역사가 이어진 느낌이다.
맑은 하늘은 사진으로 다시 봐도 그때의 뜨거운 햇빛이 느껴진다. 6월부터 우기라고 하지만 맑은 날이 잠깐이라도 있는 한 여름날엔 엄청 뜨거운 햇빛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햇빛에 맨살이 드러난 채로 다니면 화상을 입을 것 같은 강도이기 때문이다.
탑의 하단은 보수 중이었다. 어떻게 보수할 계획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만큼은 철저히 관리하는 것 같았다. 랜드마크이니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동상 아래 설명이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자세히 읽어 보진 않았다. 사진을 찍어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읽을 생각이었다. 고대 국가에선 왕이 곧 신이었는데 우리나라도 왕을 신으로 받든 경우가 있었나 생각해 본다. 왕을 곧 신이라고 칭한 경우는 궁예 빼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Oil Painting : Prince chanhthabouly PRAISTHISKE or Boulychanh OUYNLOUYN who built the SITHUMMAHAYSOUK stupa in Buddhist ERA 236 or 307 BC
유화 : 불교시대 기원전 236년 혹은 307년에 시툼마하이수쿠 부도를 세운 찬타블리 왕자 Praisiske 혹은 Boulychanh Ouynlouynn
얼핏 보면 전설의 땅꾼을 그린 것 같다. 하지만 근본부터 왕자 또는 그에 준하는 인물을 유화를 그린 것이었다.
이때는 뱀을 잘 잡는 게 강력함의 상징이었나 보다. 그림으로 남길 정도니 말이다.
나름대로 빠르게 돌아본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중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왔다. 단체 관광인 만큼 빠르게 둘러 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Oil Painting : The grate King Sayyasethathirath who lead built Thatluang Stupa Viemtiane in 1566
유화: 1566년에 탓 루앙 스투파 비엔티안을 이끄는 사야사티라트 왕
탓 루앙 건설 당시 모습을 유화로 그린 것이다. 당시로선 큰 공사였는지 코끼리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탓 루앙은 건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규모 공사 때 어떻게 건물을 지었을까?
몸으로 때웠을 확률이 높다. 조선 시대에 와서야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로 수원 화성을 쌓는데 이용했으니 말이다.
사각형 형태로 지어서인지 네 면이 모두 같은 디자인이다. 정 사각형인지 직사각형인지 모르겠지만 정사각형으로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전엔 탑 끝에 진짜 황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828년 태국에 침략 당했을 때 파괴되고 황금도 가져간 것 같다. 지금까지 진짜 황금으로 남아 있었다면 더욱더 빛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옛 건축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관람 통로 위에 지붕이 없었다면 이렇게 관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양산을 써도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반 정도 돌아본 그때 유물들이 없는 복도가 나온다.
배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걸 개발한 사람의 이름과 언제 사망했는지에 대한 날짜가 적혀있었다. 라오어로 쓰여 있어서 읽을 수 없으므로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문맥만 파악할 뿐이다.
구글 번역기로 보니 탓 루앙을 복원할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기록한 비석으로 확인되었다. 총금액을 얼마를 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과 금액을 남겨 주니 복원에 도움을 줄 맛이 더 생긴다.
오후 3시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불교 기반의 국가라서 그런지 불상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유물의 대부분이 불상과 사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 유물 빼고 남은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화강암처럼 생겼다. 그런데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과연 무슨 돌이길래 전시까지 해 둔 것일까?
정면 샷보다는 역시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서 찍었을 때 더 멋스러운 것 같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라오스 사람이 아니어서 여길 봤을 때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아마 라오스 사람들에게 이곳은 성지나 다름없을 것이다.
매년 11월이면 이곳에 라오스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행사를 한다고 한다. 그때는 이 한산했던 곳이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림짐작해 봤다.
앞으로 몇 시간 뒤면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군대 가기 전에 느껴본 것 같다. 불과 몇 시간 뒤면 사회와 단절된 훈련소로 들어가는 느낌. 또는 휴가 후 자대로 복귀하는 느낌이다.
어제는 석양이 지는 날 왔었는데 지금은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다. 그래서일까? 어제처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생업에 종사해서 안 보이는 것인지 더운 낮이라 집 안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있다.
광장에서 본 열대 나무. 한국의 풍경과 다르다는 것을 식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같은 더위여도 풍경이 다르면 외국이라는 생각이 더 빨리 와닿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알고 공부했으면 지금 보는 이 모습들이 정보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이국적인 풍경이란 것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이 느낌도 나쁘지 않지만 지식이 가미되면 또 다른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언제 다시 와 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크게 변할 것 같진 않다.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칸을 나눠 놓았다. 그림과 함께 있으니 이곳에 버려야 할 쓰레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오토바이를 기반으로 만든 이동 수단. 우리나라에는 툭툭이라고 많이 알고 있는데 같은 모양이어도 라오스에서는 라오스에선 잠부라고 부른다.
현지인보다는 여행자들의 이동 수단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편리하다기보다는 자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이 필요해서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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