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기억되는 용산 전쟁 기념관

6.25 전쟁 형제 동상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은 공산화를 위해 남침을 강행했다. 기적적인 UN군의 참전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그로부터 3년여 간의 길고 긴 전쟁 속에 수많은 자국민은 물론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참전한 UN 국가의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재는 휴전 상태지만 그때의 아픔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용산 전쟁 기념관을 가면 6.25 전쟁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억은 희미해 지지만 기록은 남는다. 후손들이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을 위해 참전한 국가와 군인들을 잊지 않는 좋은 장소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산가족도 없었을 것이고 꽃 다운 나이에 죽은 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먼 타국에 와서 연고도 없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참전한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과 목숨 받쳐 싸운 미국을 비롯한 UN군의 감사는 죽을 때까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평화롭게 살고 있다 보니 그 감사와 기억은 희미해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2026년 봄. 6.25 전쟁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용산 전쟁 기념관을 찾아 갔다.

형제의 상

용산 전쟁 기념관의 상징과도 같은 동상이라고 생각 한다. 2004년 1,000만 영화였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상. 한국 국군 장교로 참전한 형과 인민군 병사로 참전한 동생이 전장에서 만난 일. 그 때의 기억을 동상으로 만들어 동족상잔의 아픔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6.25 전쟁 형제 동상 자세히

용산 전쟁 기념관에 가면 많은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단체로 관광을 와서 해설자가 이곳 저곳 설명 해 주는 관광객. 일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외국인들 등 한국의 어떤 곳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다. 6.25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형제의 상 아래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6.25 전쟁 형제 동상 아래

좌우 벽면에는 모자이크로 무엇인가 만들어 놓았다. 6.25 전쟁의 아픔을 극복 해 나가자는 주제라고 하는데 한 눈에 봐서는 어떤 주제인지 알기 어려웠다.

6.25 전쟁 형제 동상 아래 벽면

반대 벽면을 보니 태극기, 백골 부대 마크처럼 보이는 형상이 새겨진 철모와 총. 어지러웠던 20세기 초중반을 장식 해 놓음으로써 국난을 극복 하자는 의지를 알 수 있었다.

6.25 전쟁 형제 동상 내 참전국들

가운데에는 6.25 전쟁 (한국 전쟁)에 참전한 UN 16개국 나라들의 국기들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 때 외국인들과 함께 이 국기를 보고 있었다. 이 때 한 사람의 국적이 독일이었는지 독일은 어디에 있냐는 물음에 한 동안 답을 안 하던 외국인이 이야기 했다.

“독일은 어느 나라의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전쟁 뿐 아니라 전 세계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중에 찾아 보니 6.25 전쟁이 끝난 1954년부터 1959년 까지 독일은 의료 지원단을 한국에 파견 했다고 한다.

봄이 오는 용산 전쟁 기념관

형제의 상 내부를 둘러 보고 나오니 아직은 겨울의 모습이지만 햇살과 온도 만큼은 봄 기운이 나는 풍경이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 외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슬픈 분위기로 조성하지 않고 희망을 심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오른쪽에 멋있는 나무가 있어 그 앞을 보니 설명까지 적혀 있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 모과 나무

모과나무
Chaenomeles sinensis

가준자: 이명결(평안남도중강도민회장)
기준일: 2016. 12. 7.
기증내용: 모과나무(수령 약 4백년, 높이 7m, 둘레 3m) 등 11종 2그루, 발전기금 5천만원

여기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다.
6.25 전쟁 때 월남해 사물에 정착한 이명걸 님은 자택 정원에 해마다 나무를 심고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모과나무를 비롯한 나무 11층 2그루를 뜻 깊은 장소에 기준하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이 경험한 6·25 전쟁을 비롯해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이 바로 그곳이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준한 그의 나무들은 전쟁기념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관람객들에게 아름다운 향기와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모과나무는 10m까지 자라며, 잎은 어긋나고 끝이 뾰족한 긴 타원형이다. 봄에는 희거나 연붉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피며, 가을에는 길고 둥근 모양의 노란색 향기로운 열매가 열린다.
열매는 약재로, 단단하고 질이 좋은 목재는 가구재로 쓰인다. 주로 관상수나 과수 또는 분재용으로 재배된다.

The Donor, Mr. Lee Myeong Geol, had moved from the North to the South during the Korean War and settled down in Seoul. He had good care of trees in his own personal garden for a long time As he moved to a new place with no garden available, he made a decision to donate his precious trees to the War Memorial of Korea where attracts a lot of domestic and international visitors. They are 29 of the 11 types the 400 old-trees, Chinese Flowering-quince. The Donor hopes that the trees will play a role in providing all visitors with a chance to take a restful and enjoyable time in the War Memorial of Korea

The Donor Mr. Lee Myeong Geol
Donation Date 2016.12.7
Donation Detail: 29 trees of the 11 types/50,000,000 won (Development Fund)

용산 전쟁 기념관 조형물

모과 나무의 왼편을 보니 청동검(상무정신)과 생명나무(평화/번영)를 형상화하여 호국 영령을 기리고, 주위의 38인 호국군상과 함께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조형물이 보인다.

용산 전쟁 기념관 조형물 모습

6.25 전쟁에 참여한 22개국의 전.사상자들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전쟁에 나가 싸우는 아들을 안타까워하며 말리는 어머니부터 피난 길에 오르는 국민들의 모습과 선봉에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형상화 되어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과 국방부

다시는 이 땅에 6.25 전쟁과 같은 참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게 되는 현장이다.

용산 전쟁 기념관 평화광장

전쟁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정문에 들어선다.

용산 전쟁 기념관 입구

계단을 통해 입구로 이어진 이곳은 평화광장 앞.

용산 전쟁 기념관 입구 주변

광장 주변엔 6.25 전쟁에 참여했던 각 나라의 국기들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깃발

지금이야 한국이 선진국이네 잘살게 되었네 하고 이야기 하지만 1950년 대 한국은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다. 심지어 전쟁이 났고 그 전쟁을 멈추기 위해 낯선 땅에 발을 딛뎠을 각 국의 젊은이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본 국방부

계단을 올라 평화광장을 내려다 보니 앞에 국방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보고 있었다. 연고도 없는 이 땅에서 죽어갔을 자국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용산 전쟁 기념관 내부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 이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 된다. 기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지만 담담히 슬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용산 전쟁 기념관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용산 전쟁 기념관 내부 벽면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나라 국화를 생화로 마주하니 조국에 대해 잊고 있던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용산 전쟁 기념관 내 외교 사진

입구를 지나 올라 오니 우리나라 외교에 관한 사진전이 있었다.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항상 도움을 요청했던 나라가 어느 날 도움을 주기도 하고 주고 받기도 하는 나라로 성장했다는 것이 증명 되었다.

호국 추모실

용산 전쟁 기념관 호국 추모실

정면을 보니 호국 추모실 입구가 보인다. 우리나라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목숨 받쳐 지켜 온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 공간으로 보인다.

용산 전쟁 기념관 호국 추모실 내

생명의 원천인 물. 에너지 자체인 태양 (빛). 한번도를 의미하는 반구형의 조형물. 이 세가지가 합쳐져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선열과 국군, 유엔군 전사자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엄숙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호국 추모실 내 글

護國追慕室

하늘에서 내리쏟는 저 신비로운 빛줄기를 보라
그 눈부신 햇살 속에 자랑찬 겨레의 숨결 흐르고
호국 위해 숨져간 선열의 얼 숭엄히 솟구친다
오 자손만대 이어갈 자유조국 충성으로 수호하리
이제 우리 앞날 더욱 융성하게 훤히 트이는 새벽
젊은 바쳐 나라 빛내는 영광의 길로 힘차게 뛰자

창조
중앙 상하 조형물

생명의 원천인 물과 에너지 그 자체인 태양빛이 이 땅을 의미하는 반구 위에서 결합하여
잉태되는 구를 태극으로 암시, 조국의 무한한 번영을 형상화 하였다
윤동구

호국의 발자취
내부 벽 부조
선열의 영혼을 추모하며 파괴와 혼란의 시대를 지나 민족화합과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오늘, 미래의 희망과 영원한 발전을 형상화 하였다.
정보원

겨레의 얼
상부 벽 회화

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선열의 넋을 기리고 겨레의 대동단겨로가 화합의 염원을 매듭으로 표현하여
단결만이 조국의 번영임을 형상화 하였다
한운성

잠시 이곳에서 시간을 갖은 뒤 왼쪽 출구로 나가 한 층 내려 갔다.

우리나라의 성곽

용산 전쟁 기념관 우리나라 성곽

우리나라 전쟁의 역사를 기록 해 둔 각 종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중 이목을 이끄는 것은 우리나라의 성곽.

용산 전쟁 기념관 우리나라 성곽 모형

미니어처로 재현 해 놓아 당시 우리나라가 어떻게 방어를 했는지 알 수 있도록 전시 해 두었다. 이 시절에 군생활 안 한게 다행이다.

거북선

용산 전쟁 기념관 내 이순신의 삶

이순신의 삶
Lifr of Admiral Yi Sun-sin

이순신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집안 형편은 곤궁했으나 문학적 감수성,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불굴의 신념 등을 물려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골격이 다부지고 활 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순신은 1576년 식년 무과에 합격하여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북방의 말단 수비 장교로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순신은 안경도에서 남쪽 바다까지 15년간 둔전을 관리하고, 여진족 및 왜구와 전투를 치르면서 일선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을 쌓아갔다.
장인 방진과 후견인 유성룡의 조언도 직책을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전함을 건조하는 등
조선 수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Admiral Yi Sun-Sin was the greatest leader who overrcame the hardships of life, he was born into a poor family, but he inherited a strong sense of justice and an indomitable spirit from his parents.

He was a stout boy and master of archery, In 1676 he passed the military officer examination and at the late age of 32, began his carrer as officer and was assigned to the northern frontier, For fifteen years he had managed government farm for the armed forces from Hamgyeong Province to southern sea districts, fighting battles to
defend the border against the Jurchen manders in the north and japanese pirates in the south. He bulit leadership as a frontier commander.

Advise from his father-in-law Bang Jin and his strong supportar Minister Yu Seong-ryong had been of much help to him in executing his duty Thereafter, Yi Sun-sin was promoted to naval commander of the right of Jeolla province,
and he had energetically set about building warships and training his crews against possible aggression by Japanese

백의종군

이순신은 조선시대 인사 등 유일하게 2차례에 걸쳐 백의종군한 인물이다.
첫 번째는 1587년 조산보 (함북 경흥)만호와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 중에 있었던 여진족 기습 공격에 대한 책임으로 백의종군한 바있다. 두번째는 정유재란 등 초계(합천) 원수부에서의 백의종군이다. 1579년 1월 이순신은 가토부대를 공격하라는 조정믜 명을 수행하지 ㅇ낳아 투옥 중이었는데, 정탁의 상소로 죽음을 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은 시급히 남서연해안의 전황을 조사하는 등 연안수습길에 나섰다.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고 적을 막게 하였다.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 앞에 하직을 고하고 울며 부르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이 또 어디 있을 것이랴.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난중일기 4월 19일

용산 전쟁 기념관 내 거북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거북선이 없었다면 조선은 사라졌을 것이다. 거북선의 설명과 모형이 한 가운데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역사실

관람 방향은 거북선을 보고 좌측부터 관람을 해야 하는데 보이는데로 관람하다 보니 오른쪽으로 들어가 거꾸로 관람하게 되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 내 전시물

그 덕분에 오버 테크놀리지를 보게 되었다. 순차적으로 봤다면 선사시대부터 시작인데 현대전부터 관람하게 되었는데 6.25 전쟁 당시 공군에 대한 역사와 창설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안중근 흉상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옆엔 안중근의 흉상과 소개가 적혀 있다.

안중근(安重根)
Ahn Jung-geum | 1879.9.2 ~ 1910.3.26
황해 해주 (黃海 海州) 출생. 독립운동가. 1908년 8월 연해주의 의병부대(義兵部隊)인 동의군의 우영장으로 일본군(日本軍)과 전투를 벌여 전과를 거둠. 1909년 2월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하였고, 10월 26일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함. 이듬해 3월 26일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殉國). 건국훈장(建國)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追敍)됨.

Ahn Jung-geun, a Korean independence fighter, served in the Korean Volunteer Army against the Japanese in Manchuria at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He assassinated Japan’s former Prime Minister Ito Hirobumi on 26th of October 1909. He was executed on 26 March 1910, in Lushun Prison in China. For his patriotic action,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건국훈장을 뜻하는 the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의 공식 명칭은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라고 하는데 수정 되어야 할 것 같다.

용산 전쟁 기념관 성

처음에 봤던 성곽을 그대로 재현한 조형물이 있었다.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만 안 들어가면 된다. 이 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적이 쳐 들어오는게 보인다면 식은땀 날 것 같다.

용산 전쟁 기념관 이순신 흉상

이순신 (李舜臣)
Yi Sun-shin | 1545.3.8 ~1598.11.19

조선 중기의 장군. 서울 출생.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로서 수군을 이끌고 옥포(玉浦), 당포(唐浦), 한산도(閑山島), 부산(釜山), 명량(鳴梁)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다.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봉해졌다.

Admiral Yi Sun-shin, Naval Commander of the Southwest Reg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successfully defeated Japanese invaders in 1592. In November 1598, he was killed by enemy fire during the Noryang Sea Battle and awarded the Seonmu Gongsin (Merit Subject) for his heroic action.

이순신의 신 글자가 앞선 거북선에서는 sin이었는데 흉상은 shin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영어 표현도 고쳐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Noryang Sea Battle → Battle of Noryang
awarded → posthumously awarded
heroic action → heroic actions

이와 같이 수정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한산도 대첩
용산 전쟁 기념관 내 한산도 대첩

지속적으로 상영하는지 모르겠다. 관람 도중 내부를 보니 한산도 대첩 당시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상영 중이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 한산도 대첩 상영

뭔가 영어 자막이 있으니 대작 같기도 하다.

UN실 부터 대형 무기실까지

한층 더 오르니 UN실이 나오고 북한의 군사도발실, 기증실이 있었다. 선사시대나 조선시대 보다 가까운 시대라 그런지 6.25 전쟁 당시 기록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당시 기록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용산 전쟁 기념관 내 비행기

대형 무기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만난 비행기. FU-236은 6.25 전쟁 당시 미 공군 제4전투비행전대 334요격전투기대대 소속으로 운용된 F-86 세이버 전투기라고 한다.

용산 전쟁 기념관 내 비행기 모형

F-86F 세이버(Sabre) 전투기는 미국 노스아메리칸사가 제작한 아음속 제트 전투기라고 하며 1955년 4월 이 전투기를 도입했으며 특유의 소리 때문에 쌕쌕이로 불리웠다고 한다. 6.25 전쟁 중반(1952년 말~1953년)에 투입되어 미그-15(MiG-15)에 맞서 유엔군의 제공권 장악에 기여한 주력 전투기.

용산 전쟁 기념관 전차와 탱크

아래엔 각 종 탱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왼쪽 주황색 계단 쪽으로 간 뒤 그 옆의 입구에 들어가면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선사시대부터 6.25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까지 한반도에서 있던 전쟁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보다 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전쟁이 이 땅에서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길 바란다.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관람료 : 무료
주차 : 소형 기준 기본 2시간 4,000원, 이후 30분당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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