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3일차
라오스 비엔티안에 온 지도 벌써 3일째. 대부분의 여행객이라면 비엔티안에 이렇게 오래도록 머물지 않는다. 비엔티안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고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오스의 액티비티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므로 지인의 안내에 따라서 비엔티안의 여러 곳을 이동했다.
첫날은 자정 즈음에 도착해서 잠만 잤다. 4시간 30분 ~ 5시간 비행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공항에 오는 시간부터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 등이 힘들었는지 도착한 날 밤에는 씻고 잠자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두 번째 날은 비엔티안의 관광지보다는 먹거리와 마사지 그리고 실생활의 모습을 돌아봤다.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가는 코스는 아니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어서 여행 유튜버가 된 것 같았다.
오늘로써 셋째 날. 점점 이곳에 적응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어느 여행지건 2~3일은 지나야 현지에 적응되는 것 같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2박 3일은 금방 지나가고 3박 4일은 되어야 휴가 다운 느낌이 들고, 4박 5일은 되어야 휴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비슷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간다는 말처럼 해외에 나와도 시간은 성실하게 흐른다.
벌써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다. 언제 돌아가나 생각이 들었지만 일정을 하나하나 해 나가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사실 라오스의 일정은 타이트했다.
마치 군대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행지에 가면 사진 찍는 게 너무 귀찮다. 현장에 있을 땐 눈으로 봤으면 됐지라고 생각이 들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사진이 없이 기억하는 것은 희미하고 현장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게 귀찮고 힘들어도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귀찮아도 사진을 찍게 된다. 생각해 보면 예전보다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고 단순해졌다.
필름 카메라밖에 없던 시절엔 촬영할 수 있는 필름 숫자에 따라서 한정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고 다 쓴 필름을 잃어버리거나 잘못 보관하면 인화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영상을 찍으려면 캠코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엔 고가의 장비라서 쉽게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무거웠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으니 이것 하나로 영상과 사진을 모두 기록할 수 있고 그 양도 많아져서 여행의 순간을 다양하게 남길 수 있다.
팟 탓 루앙
귀국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니 부지런히 움직인다. 셋 째 날 저녁에 방문한 곳은 라오스의 상징과도 같은 파탓 루앙 (Pha That Luang). 파탓 루앙의 뜻은 위대한(루앙) 탑(탓)으로써 위대한 탑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절에 있는 탑과 디자인은 다르지만 불교 하면 탑인 것 같다. 탓 루앙의 높이 44미터이며, 탑의 둘레만 해도 68x69m (4,692㎡)라고 한다. 평으로 환산하면 약 1,419평 정도다.
탓 루앙은 라오스 국장에도 있고 지폐에도 있다. 이 정도면 라오스가 곧 탓 루앙이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탓 루앙 역사
위대한 불탑이란 뜻의 탓 루앙은 기원전 3세기경 라오스의 고승 5명이 인도에서 부처의 가슴뼈 (사리)를 가지고 와서 stūpa (스투파 / 탑塔)를 세우고 안치했다고 한다.
스투파 : 불교에서 부처나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塔’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
그 자리가 탓 루앙이 되었는데 당시 건물과 함께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역사는 셋타티락 왕 (1534 ~ 1571) 시대에 정립된다.
라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할 정도이며 당시 라오스 수도인 루앙프라방에서 현재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옮긴 왕이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서울)로 천도한 것과 같은 업적을 지닌 왕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탓 루앙 또한 그때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역사 기록을 보니 제1차 세계 대전 때 중국과 태국에 파괴되어서 1935년 재건되어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전에 19세기 태국 시암 왕조에 무너진 적도 있다고 하니 다사다난한 역사의 한 면을 보여 준다.
탓 루앙의 운영 시간은 아래와 같다.
화 – 일 : 8:00 ~ 12:00 / 13:00 ~ 16:00
입장료 : 10,000킵 (약 750원)
방문한 시간이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보니 탑 내부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주변부는 돌아볼 수 있었다.
탓 루앙 사원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또 다른 사원들도 있는데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탓 루앙 주변, 왓탓 루앙 타이 사원
도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 유홍준 저>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사전 지식이 많이 없다 보니 건물을 보거나 무언가를 볼 때 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라오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지식이 있었다면 이건 무슨 양식의 건물이고 왜 지어졌으며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알았을 텐데 지금의 시각으로는 불교 양식의 건물로만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
역사, 건축 양식 등을 알면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디테일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 마음을 알았을까? 가이드 해 준 지인이 한국 사람은 알기 어려운 역사 이야기를 해 주었다. 탓 루앙을 바라볼 때 왼쪽에 큰 건물이 있는데 예전에는 방이 1,000개였다고 한다.
아마 과거 라오스가 융성했던 시기에 지어졌던 건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 구조가 리모델링이 되어서 예전처럼 많은 방은 사라졌다고 했다.
대신 건물 형태는 유지하는 것 같았다. 건물 내부는 리모델링 되었으나 그 외관은 그때 모습을 유지한 것 같다.
탓 루앙 주변 동서남북에 절이 4개가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남과 북의 절만 남아 있다. 건축 당시 제일 중요한 탓 루앙을 중심으로 절들을 건축했던 것 같다.
탓 루앙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을 보면 사원 입구가 보인다. 이곳은 왓탓 루앙 타이 사원 (남쪽 탓 루앙 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절 입구를 보자마자 수십 년 전 유원지라고 부르는 곳이 있던 시절의 감성이 났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그런 감성들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흔치 않았기에 새로웠다.
세월이 지난 콘크리트 느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탓 루앙은 입장료가 있지만 이 절의 입장료는 없다. 탓 루앙은 시간이 늦어 들어갈 수 없으니 지인의 안내로 사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좌우엔 수행하는 듯한 모습으로 가부좌를 튼 동상이 보인다. 요즘 이런 자세를 이야기하면 무릎 관절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저 자세를 취해야 집중이 되나 보다.
사원을 보수하는 중인데 들아가 볼 수 없으니 그 안엔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궁궐에도 용마루에 잡상들이 있다. 중국에서는 악귀를 쫓는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왕궁이란 표시로 쓰인다고 했다. 라오스 사원의 용마루의 모양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으나 현지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추측하기로는 불교 문화권이니 지켜 주는 수호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날이 더운 곳이라 그런 것인지 불심이 가득해서 화려하기 지어서 그런지 몰라도 건물 하나하나가 높고 크다. 현실적인 이유는 평평한 땅이 넓어서 이렇게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산지였다면 이렇게 거대하기 짓기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어벤저스인가? 여러 종교의 신들의 조합이다. 힌두교의 시바신처럼 보이는데 화려하다.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라오스어를 읽을 수 없어 구글 번역기로 보니 이 동상의 설립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거저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 주는 안내판이다.
총 공사 금액이 1억 2천3백만 킵. 한국 돈으로 약 860만 원을 들여서 만들었다. 종교적 의미를 기록한 것인 줄 알았는데 누가 지었는지와 기도 제목 그리고 여기 오는 사람들에 대한 바람을 적어 놓았다.
라오스에 살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 신들에 대해 알기 때문에 생략했나 보다.
온갖 신들의 컬래버레이션이다. 복을 준다고 하는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도 보인다. 힌두교인이라면 가슴이 웅장해질 것 같다. 이곳에 다 모여있으니 말이다.
주변엔 탓 루앙의 첨탑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첨탑을 본떠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금으로 만들었으면 더 멋졌을 것 같다. 어쩌면 처음엔 금이었는데 약탈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석양을 받은 탓 루앙과 그 앞에서 조경을 하는 승려를 보니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제초 작업을 마무리하며 일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감성을 여기서 다시 느낄지 몰랐다.
크기가 40미터 정도 된다고 하는 와불. 부처가 열반에 올랐을 때의 모습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열반에 오르면 눕게 되나 보다. 이제 다 이뤘으니 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다.
와불을 뒤로하고 사원 주변을 보니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지 모를 큰 나무들이 보인다. 오래돼서일까? 원래 큰 나무일까? 아니면 기후가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보던 나무들보다는 거대했다.
분명 의미가 있는 동상일 텐데 종교적 배경을 모르니 알 길이 없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신의 이름은 <나가>라고 하며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소원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한다. 돈으로 보답해도 되고 돈이 없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통해 보답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아무튼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포토존처럼 보이는 벤치가 보인다. 2명이 앉으면 딱 맞는 크기다.
사원 내에 있는 개. 이름은 모르지만 온순한 걸 보니 사람들과 지낸 기간이 꽤 길어 보였다. 하긴 이 정도까지 컸다면 분명 눈치가 좋았을 것이다.
무엇 하나 빈 공간 없이 디테일을 보여주는 사원. 창문만 만들어도 될 텐데 그림과 조각상까지 그냥 지나친 것이 없어 보인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보니 테마파크에 온 것 같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존 익스프레스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을 배웅해 주는 동상. 사원인 만큼 분명 의미가 있는 동상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다.
노을이 지는 탓 루앙
사원을 구경하고 나오니 노을과 함께 어우러진 탓 루앙의 색상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곧 있으면 이 노을이 사라지고 캄캄한 밤이 찾아올 것이다.
셋 타 티락 왕
탓 루앙을 지었다고 알려진 왕으로써 라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이다. 서울 광화문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왕의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나라를 대표하는 왕으로 탓루앙의 센터에 앉아 있었다.
앞의 카펫은 절을 하는 곳인지 기도를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함부로 올라가면 안 될 것처럼 보였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거대한 나무가 또 있다.
어떤 나무인지 모르겠지만 반얀나무 (보리수나무) 같기도 했다.
얼마큼 걸었을까? 뒤를 돌아보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날을 기억과 사진에 담아 둔다. 이곳 사람들에겐 매일 보는 풍경이겠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볼 때 다시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덥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기온 속에서 이국적인 건물을 보며 이곳이 라오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화려한 건물을 뒤로하고 일정을 마무리 지어 간다.
광장이라고 하기엔 활주로와 비슷해서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활주로가 맞다고 한다. 지금은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바뀌기 전 서울 여의도 광장과 같은 곳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도 비행기를 착륙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이곳에 실제로 비행기가 착륙하는 행사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국군의 날처럼 그런 행사가 아닐까?
그런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면 굳이 이착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노을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 보통의 사람도 시인이자 작가로 만들어 주는 신묘한 힘이 있다. 해가 지기 전 잠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 베어 그릴스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해가 지는 모습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이곳에선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라오스 가요인지 모르겠지만 신나는 음악이다. 어딜 가나 야외에서 음악 틀어 놓고 체조하고 운동하는 것이 기본인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근처에 웅장한 건물을 보게 되었다.이곳은 관공서이며 주요 기관들이 이곳에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보니 한국으로 보면 광화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은 탓 루앙이고 세종대왕 동상은 셋 타 티락 왕이며 넓은 광장이자 활주로는 광화문 대로와 같고 관공서 건물은 광화문 앞에 정부 주요 부처들이 모여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보너스로 어제 못 봤던 빠뚜사이의 분수. 조명과 함께 어우러지니 라오스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비엔티안에서 데이트한다는 사람들은 한 번쯤 와 봤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