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 관광지
강원도 철원은 일반인들에게는 군부대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부대 외에 여러 천혜의 자연을 기반으로 한 관광지들이 있다.
과거 용암 지대였던 곳이다 보니 주상절리를 비롯해서 폭포와 계곡 그리고 한국 전쟁의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7월에 방문했던 곳은 노동 당사와 직탕 폭포다.
노동 당사
노동당사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1946년 북한 정권하에 지어진 건물로 공산독재 정권으로 주민을 통치할 목적으로 지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라는 목적으로 1개 리당 백미 200가마씩 거둬들였다고 한다.
공산당의 민낯이 그대로 볼 수 있는 역시다.
자연환경을 보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 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 당사를 가 본다.
앙상히 뼈대만 남은 건물
노동당사를 지을 때 내부는 보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공산당원들만 동원했다.
철저히 공산당을 위한 건물이었고 이 건물의 목적은 주민 감시였다.
당시 철원은 인구 3만 명이 살고 있는 번화가였다.
공산당이 보기에 착취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에 반하는 사람들은 고문치사를 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실제로 지금도 노동 당사 뒤편엔 그 당시 참상을 보여 주는 증거로 유골, 실탄, 낫, 철사 등이 발견된다.
악명 높은 노동 당사는 한국 전쟁 이후 건물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수준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노동 당사 앞엔 넓은 공원이 있는데, 2017년부터 철원역사 문화공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2022년 7월 27일, 개장하게 되었다.
지금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1930년대 철원군은 인구 8만 명 이상이 거주하였던 강원도 3대 도시였다.
당시 존재했던 양장점, 금융조합, 공립보통학교, 의원, 약국 등등 일제 강점기 때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소이산 모노레일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 금액은 일반 7,000원 (철원 상품권 교환 3,000원)
그동안 소이산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모노레일을 타면 힘들이지 않고 소이산에 올라 철원 평야를 바라볼 수 있다.
예전에는 노동 당사만 있었는데, 지금은 문화 공원이 있어서 1930년대 ~ 50년대까지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 사진은 2016년 5월에 방문했을 때는 노동당사의 모습이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일까?
봄이 주는 생명력도 밝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건물 여기저기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우리나라 국군과 공산당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노동당사 역사
등록문화재 제22호 이 건물은 1945.8.15 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6.25 전쟁 전까지 사용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라는 구실로 1개 리당 쌀 200 가마씩 착취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는 한편, 건물의 내부 작업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 조적만으로 지어진 무철근 3층 건물로써 당시 이 건물 일대는 인구 3만 명이 살았던 철원읍 시가지였으나 6.25 전란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유일하게 노동당사 건물만 남아 있다.
여기저기 포탄 자국과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노동당사는 6.25 전쟁의 아픔과 비극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철원이 얼마나 치열한 격전지였는지 짐작이 간다.
공산치하 5년(1945~1950)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를 체포하였고 고문과 학살 등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하였으며, 이곳에 한번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올 만큼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다.
이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사 줄 등이 발견되었다
2002.5.27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작품명 두근두근
남누리 북누리가 / 하나 되는 날
녹슨 쇠 가슴에 / 심장이 뛴다
두근두근 / 두근두근
2018년 5월 작가 김현선
본 작품은 높이 68m로 분단 현실의 슬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장을 표현한 가슴의 하트 모양은 통일의 두근거림을 나타낸다 또 심장에서 내려오는 LED 미디어 보드는 분단된 기간을 시간:분:초로 나타내어 분단의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분단의 시간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을 기점으로 늘어가고 있다.
바닥에는 철원 향토 시인인 정춘근 작가의 ‘6시와 12시 사이’에서 인용된 시구를 담아 분단의 슬픔을 공유한다.
노동 당사의 뒷모습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건물도 낡았다.
여기저기 허물어져가는 모습이 보이고, 안전을 위해 기둥을 받쳐 놓은 모습이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한국 전쟁이 나기 전까지 이 건물은 공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힘 없이 이곳저곳이 무너져가고 겨우 모양만 유지하고 있다.
안전상 일반인들은 내부를 들어가서 볼 수는 없다.
19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 뮤직비디오를 찍은 걸로 보면, 지금보다 통제가 덜 했을 것 같긴 하다.
그 시절에 이곳을 왔다면, 조금 더 안쪽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철저히 공산당원을 위한 건물이었으므로 당시 본인이 공산당원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이 이 건물에 들어왔다는 것은 고문 당해서 거의 반죽어 나가거나 죽어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건물 옆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가까이서 내부를 볼 수 있는 코스였다.
시력이 좋거나 줌 성능이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면, 건물 벽면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곳곳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과 점점 무너져 가는 건물
노동 당사 건물이 언제까지 이 자리에 남아서 후대에 전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건물의 역사와 용도 그리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이 오래도록 전해지길 바란다.
역사에서 자연으로 가다
노동 당사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자연이 만든 관광지이며, 철원 9경 중 하나인 직탕 폭포
노동 당사에서 직탕 폭포까지 거리는 약 10km
자동차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리는 폭포이며, 폭 80미터, 높이 3미터의 폭포다.
나이아가라에 비하면 개천도 안되지만 한국에서 보면 꽤 큰 규모인가 보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만든 매운탕이다.
주변에 식당이 있으니,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매운탕을 먹고 싶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소 : 노동 당사
주소 : 강원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직탕 폭포
직탕 폭포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 길로 들어가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드는 길이 나온다.
일반 도로보다 조금 더 내려가는 도로가 나오고, 이 길을 따라 계속 이동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차량을 길가에 주차를 하고 둘러보니
주변에 기암절벽들이 보인다.
사진으로 봤던 직탕 폭포가 눈앞에 보인다.
폭포라고 느껴지기보다는 낙차가 조금 있는 강가로 보인다.
직탕 폭포의 설명과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일반적으로 폭포라 하면 산 한쪽 면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이 폭포라는 정의라면 직탕 폭포는 그에 못 미치는 모습일 것이다.
그래도 다른 폭포와 다른 것은 주변에 돌다리가 있어서 폭포 가까이서 유명한 한탄강을 건널 수 있다.
사진으로 보면 감이 안 오는데, 유속이 빠르고 소리도 시끄러워서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다리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줄기가 빠르게 흘러가는 걸 보니 겉보기와는 달리 폭포는 폭포인가 보다.
장소 : 직탕 폭포
주소 : 강원 철원군 동송읍 직탕길 86
역사와 자연을 함께 한 철원 여행
생각을 멈추고,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누군가는 자연을 바라봐야 휴식을 하는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은 호텔에서 쉬는 것이 휴식일 수 있다.
철원은 역사, 자연 모두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 모두를 알고, 체험하기 원한다면 최적의 관광지 중 한 곳이라 생각된다.